GQ: Is This the Most Powerful Man in Sports?

William "World Wide Westside" Wesley

이 사람이 스포츠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사람일까?

2004년 11월 미시건 주 어번 힐.
중년 부동산 대출 중개인인 윌리엄 웨슬리는 경기장 위로 뛰어들어 제복 경찰들로부터 론 아테스트를 보호했다. 아테스트의 팀 동료들은 관중들과 서로 주먹을 날렸고 코치들과 심판들은 질서를 유지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 부동산 대출 중개인은 앞으로 뛰어들어 경찰을 가로막았고 잠시 뒤 페이서스 동료인 오스틴 크로셔와 레지 밀러가 아테스트를 붙잡기 위해 달려들었다. 음료수와 팝콘이 쏟아지는 가운데 웨슬리는 코트에 있던 저메인 오닐을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통로에서 오닐이 그를 뿌리치기도 했지만 웨슬리는 그를 껴안고는 락커룸으로 끌고 갔다.

2년 후, 레지 밀러에게 코트 위에 웨슬리가 있던걸 물어보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그 사람이 그 와중에 무슨 짓거리를 하던 겁니까? 그는 아무 관계 없는 사람이라고요. 그는 모든 일에 다 간섭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윌리엄 웨슬리, 혹은 별명인 웨스가 그 소동에 연류되는걸 보고서 별로 놀라지 않았다. 
NBA 분석가인 데이빗 알드리지는 "어느 순간, 어느 스포츠 이벤트에서라도 웨스가 보일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라고 했다.
지난 몇 년간 웨스는 여러 곳에서 목격됐다. 달라스 카우보이스가 슈퍼볼에서 우승했을 때 경기장 위에서 달라스 구단주인 Jerry Jones를 껴안았고 마이애미대학 미식축구팀이 전국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했고
디트로이트 피스톤스가 우승했을 때 조 듀마스와 껴안았다. 그는 NBA 올스타 경기에서 Jay-Z 옆에 앉아있었고 NCAA 4강 경기에선 Nike 창업자 Phil Knight 옆에 앉아있었고 미국 농구 대표팀이 라스 베가스와 일본에서 훈련할 때 경기장에 앉아있기도 했다. 거물 에이전트이며 웨스의 오랜 친구인 David Falk (역주: 엘튼 브랜드의 에이전트. 과거 마이클 조던의 에이전트였음)는 "웨스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스포츠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두 세 명 중 하나라는걸 압니다." 라고 얘기했다.

유명 농구 기자인 Scoop Jackson은 2005년 3월에 ESPN Page 2에 쓴 글에서 "난 웨스 웨슬리가 스포츠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고 필 나잇이 그 다음 두번째로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라고 썼다.
잭슨이 그 글을 쓴지 8개월 후 뉴저지에 기반을 둔 농구 기자인 Henry Abbott은 대학들에 선수를 공급해주는 아마추어 농구 클럽부터 시작해서 NBA가 허락하는한 가능한한 빨리 선수들을 영입하고 싶어하는 에이전트, 신발회사, 코치, 구단주, 프론트 운영진, 선수 등 농구 세계에서라면 모든 것들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광적인 조사 결과를 그의 블로그인 TrueHoop에  올렸다. 바로 윌리엄 웨슬리다.

그렇다면 왜 일반인들은 그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을까?
내가 기자, 선수, 에이전트, NBA 운영진들에게 이 기사의 주제에 대해 얘기할 때 마다 다들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잘 해봐"라고 얘기했다. 웨스와 가까운 사람들 조차 그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모른다. 시카고 선-타임스의 기자인 Lacy Banks는 20년 전 웨스를 만났을 때 겪은 혼돈을 이렇게 회고했다. "처음엔 그가 FBI나 CIA의 비밀 요원인 줄 알았습니다. 그 다음엔 그가 선수들에게 여자를 공급해주는 뚜쟁이거나 사채업자나, 보디가드나, 리그 부총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웨스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제대로 아는 소수의 사람들은 절대 입을 안연다. 그런게 웨스가 원하는 방식이다.


웨스에 관해 떠도는 여러 얘기들은 놀라울 정도다.
그는 프랭크 시나트라 장례식에 초대받았었고 친한 친구인 클린턴 부부의 정보요원으로 일했었다. 스파이크 리는 그의 전기영화를 계획중이다. 그 소문들 중 영화 얘기가 가장 그럴듯하게 들린다. 왜냐면 뉴저지 남부 중산층 가정 출신인 William Sydney Wesley가 어떻게 Worldwide Wesley가 됐는지에 대한 얘기야말로 바닥부터 시작해서 거친 세상속에서 상류 계층으로 올라가는 한 편의 영화 같은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얘기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1980년대 초반 뉴저지주 Cherry Hill 시에 있는 Pro Shoes라는 작은 가게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가게는 고등학교 선수부터 시작해서 필라델피아 76ers의 데럴 도킨스나 덕 콜린스에 이르기까지 그 일대 모든 농구 선수들을 상대하던 가게였다. 당시 16살이던 윌리엄 웨슬리는 단골들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놀라울 정도로 상냥한 판매원이었다. 그는 TV를 통해 프로 선수들에 대해서 알았고 같이 경기장 위에서 몸을 부딪히면서 고등학교 선수들에 대해서도 알았다. 그 중에는 Cherry Hill East 학교의 포인트가드 Leon Rose도 있었고 Camden 학교의 두 괴물들인 Billy Thompson과 Milt Wagner도 있었다.

와그너: "웨스는 저와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제 농구 선수 경력 내내 제가 어디에 있든 그는 저를 따라왔습니다."

1981년 밀트는 루이빌 대학에 진학했고 NCAA 토너먼트 우승을 이뤄냈다.
1987년 밀트가 LA 레이커스 팀에 합류했을 때 웨스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함께 LA로 갔다.
그러면서 그는 대학에서 NBA로 진출한 어린 선수들에게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는걸 알게 됐다.

Banks: "맞춤 옷 디자이너가 필요한가요? 웨스가 그걸 도와줄 수 있습니다. 복잡한 콘로우 머리를 할 줄 아는 헤어 스타일리스트가 필요한가요? 웨스가 찾아줄 수 있습니다."

1989년, 밀트의 루이빌 팀 동료였던 Kenny Payne은 웨스를 76ers 동료인 Rick Mahorn에게 소개시켜줬다. 매혼은 그가 소유한 Cherry Hill에 있는 나이트클럽 문지기로 웨스를 고용했다. 그 곳은 필라델피아 지역 프로 운동선수들이 즐겨 찾는 가게였고 곧 웨스는 그 가게를 운영하게 됐다.

힙합그룹 2 Live Crew의 래퍼인 Luther Campbell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난 웨스를 따라다니며 유명해졌습니다. 우린 함께 NBA 올스타 경기에 갔고, 마이애미 대학 경기에도 갔고 모든 곳에 갔습니다. Atlantic City에서 열린 마이크 타이슨 경기에 관람하러 갔을 때 웨스는 저를 카지노장으로 데려갔습니다. 그 곳 종업원이나 거물인사들만이 그 곳에 들어갈 수 있었죠. 저는 '맙소사, 도대체 넌 뭐하는 사람이길래 이런데 들어올 수 있는거야?'라고 했고 그러자 웨스가 '난 그저 모든 사람들을 알 뿐이야' 라고 했습니다."

웨스는 1980년대 후반 혹은 1990년대 초반에 밀트 웨그너가 그를 마이클 조던에게 소개시켜 줬을 때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조던은 웨스에게 농구 캠프에서의 일자리를 주었다. 
레이시 뱅크스에 의하면 그 후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웨스가 갑자기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를 락커룸, 경기 1등석, 호텔, 레스토랑 등 모든 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라고 한다. 
1993년엔 웨스는 시카고로 이사했고 조던, 불스 팀과 가깝다는 것은 그의 사업에 큰 도움이 됐다.

웨스는 시카고에서 클린턴 부부, 필 나잇, 리복 임원인 Tom Shine 등과 친구가 됐다. 그는 내부 정보를 제공하고 인터뷰 하기 힘든 스타들과의 인터뷰를 마련해주면서 언론과 가까워졌다. 그러면서 그는 운동선수들에게 신용할 수 있는 조언자이자 해결사로서 명성을 얻게 됐다.

샤인: "어느 NBA 선수가 심각한 도박 빚을 진 적이 있습니다. 그가 돈을 빚진 사람들은 위험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고 웨스가 그의 목숨을 구해줬습니다."

1997년에 알렌 아이버슨이 마리화나 소지와 총기소지 혐의로 체포됐을 때 웨스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 그 당시 아이버슨의 동료였던 리복 임원 Que Gaskins에 의하면 "알렌에게 문제가 생긴 후 웨스가 우리에게 연락해
우리가 제대로된 수단을 가지고 있고 제대로 된 사람들과 접촉하고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그는 NBA 선수 노조 의장인 빌리 헌터와 아주 아까운 사이였고 알렌이 자기 의견을 말하고 싶으면 빌리가 그의 얘기를 들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라고 한다.

여러 정보통들에 의하면 웨스는 아이버슨과 감독이었던 래리 브라운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잘 알려진 얘기에 의하면 웨스가 AI에게 전화를 걸어 불평을 그만하고 연습에 참가하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리그 전체에 걸쳐 여러 감독들도 웨스가 선수들에게 행사하는 영향력을 알게 됐다. 

클리블랜드 감독 마이크 브라운:
"이런 식으로 얘기해보죠. 저에게 문제가 생기고 외부 도움이 필요하면 전 웨스에게 전화를 겁니다. 우리는 항상 연락하는 사이입니다."

2001년, 웨스가 대부인 밀트의 아들 Dajuan Wagner는 전세계 고등학생중 최고 농구선수였다.
만일 다주완이 고등학교 2학년 때 NBA 드래프트에 참가했다면 1번픽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웨스는 당장 NBA에 진출하기 보단 1, 2년 정도 멤피스 대학의 John Calipari 감독 밑에서 뛰라고 다주완을 설득했다.
그 거래 덕분에 다른 여러가지들도 얻을 수 있었다. 웨스는 다주완이 시험 성적 때문에 대학 진학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다주완의 친구이자 주 올스타에 선정된 Arthur Barclay를 같이 받아주는 학교에 진학하려 한다는걸 칼리파리에게 분명히 전달했다 (달성). 그리고, 밀트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는데도 멤피스대학 농구팀 운영 책임자로 고용됐다. 그 뒷거래 소문이 새어나가자 언론들은 이 일이 합법적인 뇌물과 다름 없다며 칼리파리를 비판했다. 
웨스는 그 일이 떳떳하지 못하다는 비난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여러 추측들을 들었지만 이건 아주 단순한 일입니다. 다주완은 수비를 향상시키고 더 높은 수준의 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다는걸 증명해야 됩니다. 칼리파리 감독은 그가 그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다주완이 멤피스 대학에 간다고 해서 내가 얻는게 뭐가 있습니까?"

웨스는 다주완이 11살 이었을 때 부터 그의 경력을 관리해줬고 다주완이 멤피스에 갔을 때 그도 함께 멤피스로 갔다. 다주완은 1학년 때 경기당 평균 21점을 기록했고 그가 1학년을 마쳤을 때 칼리파리는 밀트와 다주완을 그의 사무실로 불렀다.

칼리파리: "전 다주완이 멤피스 대학으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걸 그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다주완의 앞에서 그의 대학 장학금 서류를 찢었습니다."

다주완은 NBA로 갈 준비가 돼있었다. 클리블랜드는 그를 2002년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지명했고 다주완이 대학에서 프로로 진출했을 때 웨스가 그 전환을 도와주었다.
다주완은 NBA에서의 첫번째 시즌에 신인들 중 득점, 어시스트, 출장 시간에서 상위권에 있었다. 몇 년 후, 부상과 질병 때문에 다주완의 프로 경력은 망가졌지만 웨스는 이미 클리블랜드에 계속 머물 새롭고 더욱 돈이 될만한 이유를 찾아냈다. 그가 Akron에 간지 불과 몇 시간 만에 그는 LeBron James라는 10대 선수에 빠져버렸다.


내가 웨스를 처음 직접 본건 Quicken Loans Arena에서 열린 클리블랜드의 경기 하프타임 때 그가 클리블랜드 GM 대니 페리와 얘기하고 있는걸 봤을 때였다. 하프타임이 끝나가자 그는 페리와 악수를 하고 1등석 자기 자리로 돌아가며 안전요원드로가 껴안고 볼보이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그의 자리는 맨 앞 줄 한가운데 자리였다. 그는 등을 기대고 팔짱 끼고 다리를 쭉 뻗은채 앉아있었다. 몇 분 마다 그는 핸드폰에 걸려온 전화를 받았고 가끔씩은 두 대 전화를 양쪽 귀에 대고 있기도 했다. 르브론이 골대로 달려들어 투핸드 슬램 덩크를 성공시키자 웨스가 살짝 웃는걸 볼 수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 표정 없이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 전, 토론토 랩터스가 방문했을 때 난 르브론의 에이전트인 리온 로즈를 보았다. 그는 Pro Shoes 시절부터 웨스의 친한 친구였고 한 때 웨스의 변호사기도 했다. 10년 전, 로즈의 고객은 떠돌이 무명선수 Rick Brunson과 몇 명의 외국 출신 선수들 뿐이었다. 그러다 2002년, 갑자기 그는 다주완 와그너, 알렌 아이버슨과 계약했다. 얼마 뒤엔 리챠드 해밀턴이 그를 고용했고 2005년에는 모든 에이전트들이 가장 원하는 고객인 르브론 제임스를 얻게 됐다.

로즈는 웨스와의 관계를 잘 드러내지 않으려 하지만 여러 정보통에 의하면, 거의 모든 로즈의 고객들이 또한 웨스의 "조카들"인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한다. 
(역주: 현재 리온 로즈는 르브론, 카멜로, 해밀턴, 에디 커리, 안드레아 바냐니, 드사가나 ㅈㅑㅂ, OJ 메이요, 죠니 플린, 마디 콜린스, 타이 로슨, 카를로스 아로요, 크리스 더블라스-로버츠, 알렌 아이버슨의 에이전트입니다.)
웨스는 르브론이 15살 때 부터 그의 경기들을 직접 관람했다. 웨스는 르브론의 어머니의 애인인 Eddie Jackson과 친구가 됐고 그 다음엔 르브론 가족들과 친해졌고 결국 르브론을 그의 우상인 Jay-Z에게 소개시켜줘서 르브론의 마음을 얻어냈다.

하지만 리온 로즈는 르브론 영입전에 뛰어들지 않았다. 결국, 서부에 기반을 둔 Aaron Goodwin이 르브론의 에이전트가 됐다. 아런 굿윈이 곧바로 르브론이 NBA에서 한 경기도 뛰기 전에 $120M 어치 광고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해줬다. 그렇지만 여전히 굿윈과 르브론의 관계는 매우 약했다. 웨스는 어떠한 관계도 오래 지속되기 힘들다고 얘기했다. 굿윈은 슈퍼스타 고객들에게 해고된 전력이 있었다. 그리고 웨스가 그 이전부터 르브론의 조언자 역할을 해왔지만 관계자들은 웨스가 르브론을 굿윈에게서 뺏으려 했다고 의심했다. 2003년, 웨스는 르브론과 아파트 같은 층으로 이사했다.

2년 후 2005년 5월, 르브론은 굿윈과의 관계를 청산했다. (웨스는 그 결정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두 달 후 르브론은 리온 로즈를 에이전트로 고용했다.

로즈가 이미 굿윈이 르브론 광고계약에서 챙긴 수백만 달러를 얻진 못했지만 웨스와 로즈는 놀라운 것들을 얻게 됐다. (웨스는 로즈와 어떤 금전적인 거래도 없다고 주장했다.)
(역주: 에이전트는 자신이 체결한 계약의 일정 부분을 얻게 됩니다. 즉, 장기 계약 중 에이전트가 바뀌어도 새 에이전트는 기존 계약에 대해선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새 계약을 체결해야만 그 때 돈을 받게 됩니다.)
최근 로즈는 헐리우드 연예 기획사인 CAA에까지 사업을 확장시켜 다양한 방면의 홍보업무와 거의 무한한 자원들을 얻었다. 그의 영향력은 2006년 드래프트 때 나타났다. 
뉴욕 닉스는 2006 드래프트에서 6'8" 스윙맨인 로날도 벌크만을 지명했고 ESPN의 채드포드는 이에 대해 "로날도 벌크만? 그는 대학에서도 평균 10점도 못한 선수다. 다른 팀 중에선 그를 1라운드에 뽑을 팀이 하나도 없다." 라고 했다. 
그렉 앤소니는 이 지명이 혼란스럽다고 했고 그 후 아이재 토마스가 벌크만과 템플 대학 출신 가드 마디 콜린스를 뽑은건 둘 다 리온 로즈의 고객이기 때문이고 이게 FA 르브론 제임스 영입에 도움을 줄거라 기대했기 때문일지 모른다고 했다.

약 한 달 후 르브론은 클리블랜드와 3년 계약을 했고 닉스는 망해 버렸다. 하지만 이 일이 의미하는 바는 리온 로즈가 NBA 드래프트와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거다. 

내가 이 가설을 데이빗 포크에게 얘기하자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 "리온 로즈는 아무런 영향력도 없습니다. 웨스가 영향력을 갖고 있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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